근 20년 동안 다양한 조직에서 정년퇴직 전후의 많은 분들과 생애계획워크숍과 개인상담을 진행해왔다.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몇 개월에 이르는 과정들을 직접 설계하고 이끌어오면서 늘 듣는 소감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조금 더 일찍, 가능하다면 50대 초반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정년퇴직이란 사건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하였거나 혹은 미지의 삶에 대한 일말의 염려가 이 같은 생각을 촉발하였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의 해석을 삶에 대한 시각을 지나치게 특정 시점으로 이끌며 시야를 좁게 한다.
‘3기 인생론’에 기대어 해석하자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생애목표를 추구했던 지금까지의 2기 인생에서는 여정의 대부분 혹은 상당부분이 직업이나 사회활동에서의 생산성에 초점을 두고 바쁘게 살았지만, 그 바쁨을 이끌어낸 대부분의 생애목표들이 달성여부를 떠나 빠르게 소멸하는 시기가 50~60대이기 때문이다. 즉, 정년퇴직이라는 생애사건이 생애계획수립의 필요성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삶의 여정에서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진 시기적 적합성이 보다 근본원인이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생애계획이 근래에 크게 부각된 것은 급격히 증가한 수명의 영향이 크다. 60대 이후에 새로운 삶의 목표가 없더라도 그럭저럭 이어갈 수 있었던 과거의 라이프스타일로는 삶의 만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작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애계획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여전히 규범적이고 통합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이 여전히 부족하다. 이는 프로그램 구매자들의 이해부족과 조급함이 원인이다. 전환을 관리하는 기술의 습득인지, 새로운 삶의 목표수립인지, 또는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것인지 계획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분 한 분의 삶을 감안하면 단순히 용어상의 차이로 규정하기는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이다. 각각의 지향이 다르므로 구성과 전개 및 전달체계가 달라져야 하며 결과적으로 먼 훗날 평가될 효과가 다르게 된다.
프로그램이나 과정의 명칭은 어떻게 정해도 좋다. 그러나 PLAN이 건축을 위한 청사진(Blue Print)과는 전혀 다르며 인간의 삶에서 계획 혹은 계획수립(Planning)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세상은 전제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더 이상 규범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존재치 않으며 미래의 행동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구조화하는 ‘계획’하는 삶이 보다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생애계획프로그램 구매자, 개발자, 진행자 모두 이러한 의미를 잘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발달론의 관점에서 보면, 자율적으로 수립한 생애계획은 삶을 안내하는 동시에 전환을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는 도구이다. 완전하게 무계획의 삶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먼 미래에 자신의 삶에 대하여 좋은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니 부디 좋은 프로그램들이 보다 널리 활용되기를 고대한다.
Ph.D., CDF-I, GCDF, MCDS, Supervisor |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