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를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100세 시대가 축복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이 힘을 얻으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다. 먼저 커리어상담자로서의 변을 적자면 우리들 커리어상담자는 내용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겠다. 재정이든 건강이든 혹은 그 밖의 무엇이 되었든 각각의 세부주제와 관련된 내용전문가가 아니므로 내담자의 절실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특정 답안을 제시할 수 없다. 취업이나 전직에 대해서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이나 직무에 대하여 소상히 알기 전에는 어떤 선택이 가장 좋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역할은 내담자가 합리적이거나 체계적인 인지과정을 통하여 선택하거나 결정하도록 돕는데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정서나 행동 차원에서도 과감히 개입하지만 이 때도 답을 제시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두 번째 변명은 필자의 생각이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효과적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요행이 필자 나름의 대책이 있더라도 각자의 삶의 목적, 방식, 상황, 활용자원 등등이 다르다. 기껏해야 수 많은 참고사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므로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동창회, 친목회, 향우회 등과 같이 다소 사적인 자리에서 ‘100세 시대’가 주제라도 되면 피할 수 없이 위 질문을 받게 된다. 필자에게는 100세 시대를 사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꼭 맞는 답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수 많은 참고사항의 하나로 읽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의 생각을 적어본다.
‘100세 시대’라는 표현이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100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베이비붐 세대의 수는 여전히 많지 않다. 지난 수 년 동안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한 자리마다 예상하는 수명(기대수명)을 물었지만 대부분 80대 후반 정도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평균수명, 기대여명, 최빈사망연령, 국가통계의 오류, 기술과 의학의 발달, 생활방식과 근로방식의 변화 등에 대하여 꽤 길게 설명한 후에야 100+ 시대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자주 반복된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같은 자신의 수명 예측이다. 자신의 기대수명을 100세에 크게 못 미치게 생각하는 상황이 초래하는 잠재적인 문제는 사실상 전혀 준비하지 못한 20~30년의 삶을 목적과 의미 없는 비참한 노후로 이어갈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90세 이전의 수명에 재정과 건강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갖고 있는 100세 시대 준비의 70% 이상이 노후자금과 건강에 치우쳐 있는 점 또한 심각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든 4층 보장을 준비하든 노후자금은 생활비, 의료비, 여가비 정도를 주로 감안하지만 대부분은 표면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비용만 포함한다. 잘 알려졌듯이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급증을 피하기 어려우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하고야 인지하는 장기간의 요양보호비와 간병료 등등이 의료비를 크게 넘어선다. 현재 보험으로 처리할 수 없는 비급여 비용이 공식적인 의료비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은 노후자금 준비는 기대수명 이내의 기간 동안에도 매우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시기를 80세 전후로 인식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80세를 넘기면서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건강히 급격히 나빠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설득력 있는 가설이지만 건강한 삶을 살던 분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거나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노화로 설명이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20여년에 걸친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정체성의 상실이 노년의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의 상실은 어느 연령에서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지만 노년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영향을 준다. 개인차원의 역할에 따른 개인정체성이나 사회적 역할에 따른 사회적정체성 등이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전환 또는 재정립이 원활치 않은 경우에 급격한 노화와 심각한 건강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노년기의 건강악화는 기본적으로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역할상실에 따른 정체성 상실이 노년의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베이비붐 세대들이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20~30년의 노년을 여가로 즐긴다는 가정은 많은 경우에 크게 잘못된 것이다. 지루해서 못 견딘다.
이상의 생각을 통하여 100세 시대를 사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완전은퇴를 90세 이후로 계획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전은퇴하는 연령이 70대 초반이며, 고령자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열악하며, 자영업이나 기업 소유주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라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역할을 갖고나 현재의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90세 가지 활동할 준비를 갖추자는 것이다. 비록 유급근로의 기회에서 소외되거나 멀어지더라도 여전히 명확한 삶의 목적을 갖고 오래 동안 살 준비를 가능 것이 100세 시대의 핵심대책이다. 노후자금과 건강관리로 80세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살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진짜 위기는 그 이후부터 100+ 까지 나타난다. 자신의 역할 혹은 정체성을 유지할 때의 장점에 대하여 부연하자면 100세 시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으며, 노후자금과 건강염려가 매우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100세 시대를 걱정하며 우왕좌왕하기 보다는 앞으로 남은 50년을 계획하며 다시 공부를 시작할 시기이다.
필자의 100세 시대 계획? 90세까지 커리어상담자, 커리어상담자교수자, 커리어전도사로서 왕성하게 활동한 후 10년간 세계일주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Ph.D., CDF-I, GCDF, MCDS, Supervis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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