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으로 살기
글쓴이 : 김웅태            작성일 : 2010-08-24
상담자로서 내담자와의 관계는 평등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담의 목표를 만들고, 내담자의 과제수행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존중과 공감이 전제되는 협력관계(Helping relationship)형성이 전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커리어 상담 현장에서는 이러한 기본전제가 일방적으로 무시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와 민간기업을 제외한 커리어 서비스 현장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그릇된 의지(?)가 정열적으로 발휘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자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취업프로그램에 등록시키거나 훈계조의 조력(?)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등의 무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산과 관리권한을 갖고 있는 ‘갑’의 무지가 판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담자와의 직접적인 계약을 통해 상담관계가 성립되는 비율이 높은 서구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조직 간의 계약에 의해 수탁사업자가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상담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수탁자에게 속한 유능한 상담자들이 내담자와 상담협력관계를 형성하고 효과적인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열정을 발휘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갑/을 관계’라는 부정적 인식이 상담의 효과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수탁에 의한 커리어 서비스의 효과성을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고 위수탁자 모두 서비스의 근본 책무(service accountability)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울러 서비스 성과를 향상시키거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수행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 수익체인 (service profit chain)’이나 ‘고객흐름(customer flow)’ 또는 비용효과적 커리어 서비스(cost-effective career service)’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이며, 정책사업예산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수행 기준(service level agreement) 조차 확립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업무를 외부조직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그 기능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 또는 명분의 확보와 같은 경우이다. 공공조직이 커리어 서비스를 위탁하는 경우는 대부분의 위탁조직이 해당 기능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전문능력이 없는 조직이 계약을 통해 전문능력을 갖춘 조직을 관리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도덕적 해이까지 곁들여져 숫자 놀음 강조하고 있다.
상담과 비즈니스 컨설팅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굳이 ‘갑/을’ 관계를 구분하자면 어느 경우이든 서비스 제공자가 권한을 갖고 있는 ‘갑’의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비즈니스 컨설팅과 커리어 컨설팅 영역에서 십 수년 동안 일해왔지만 필자는 단 한번도 ‘을’의 위치에서 일했던 기억이 없다. 개인과의 계약이든 조직과의 계약이든 나의 역할은 항상 고객을 ‘내가 주도적으로’ 돕는 것이었고,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갖게 만든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상담자가 계약이행에 급급한 ‘을’이 되면 고객과 합의한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한다. (물론 이 주장이 지시적(directed) 상담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자. 고객이 갖고 있는 핵심욕구, 내면의 욕구를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면 고객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가 수행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 새롭게 보일 것이다. (참고로 개인이든 조직이든 내면의 핵심욕구나 이슈를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거나 공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계약상의 또는 표면적인 성과에 연연하게 되고 비전문가의 감독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토목공사 현장에서는 설계자가 거의 모든 사항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해두었고, 감독자는 설계수치에 맞추어 위탁자의 과업을 관리/감독하므로 전문가인 설계자와 준전문가인 감독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커리어 서비스에서는 상담자가 전문가이며 감독자는 전문기능이 없는 조직의 행정가일 뿐이다. 고객의 핵심 니즈를 파악하고, 그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문성에 바탕을 둔 당신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고객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전문가는 바로 당신이며, 당신이 ‘갑’을 행세할 수 있을 때 고객의 이익이 지켜지고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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