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
글쓴이 : 김웅태            작성일 : 2016-01-13

하얀 눈이 들판을 덮게 되면 비로서 보이는 작물이 있다. 듬성듬성 보이는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보리싹이 비로서 제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눈이 수북이 내리면 온 천지를 하얀 세상으로 만들고 비로서 형형색색의 물체들이 횐 눈 아래로 자취를 감추게 되지만, 아름다움은 바로 그때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가을의 단풍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한 가지 색 만으로도 세상을 다시 그려내니 사실 그 어떤 풍광에 뒤쳐지지 않는다.

지난 가을 월스트리트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인 신순규의 수필집인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살지만,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기 쉽다. “가끔 눈을 감으면 마음으로 듣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저자의 생각과 같이 눈을 감으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 혹은 잊고 살았던 것들이 다시금 소중하게 보일 때가 있다.
눈을 떠야 비로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물론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을 뜨라는 이야기이고, 적어도 무지에서 깨어나라는 뜻임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눈을 감든 뜨든 무엇을 보거나, 어떻게 보거나, 더 나아가 왜 보는가 등과 같은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시력으로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으나 정작 눈 아래의 보리싹과 같은 소중한 것들은 보기가 쉽지 않다. 두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는 무엇을 할지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지 또는 왜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정말로 눈을 감든지 뜨든지 해야 가능해진다. 뜨던 감던, 바깥 세상이 아닌 자신 내면의 세계로 시선을 돌릴 때 비로서 답을 찾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한 두 걸음씩 물러서면서 비로서 눈을 가렸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짐을, 그리고 동시에 더 큰 책임을 느끼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기쁨과 감사가 함께하고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커리어 상담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세상과 결부시켜 답을 찾음으로써 ‘무엇’ 또는 ‘무엇을 위하여(what for)’에 대한 답을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일 때 비로서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며, 눈을 감고 세상의 현란함과 거리를 둘 때 비로서 내면의 소중한 것들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영혼의 눈을 뜰 때 비로서 권력, 금력, 명예 등이 아닌 아름다운 진실이 보이게 된다.
눈을 뜨던 혹은 감던,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바깥 세상으로의 시선은 잠시 멈추고 한 해의 출발시점에서 잠시 눈을 감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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