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글쓴이 : writer            작성일 : 2016-05-25

8세기 중엽 왕적신(王積薪)이 쓴 글인 바둑을 둘 때 명심하고 준수해야 할 열 가지 요결(要訣)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바둑계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널리 존중되고 있는 금언이다. 자구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자신의 말이 산 다음에 상대의 돌을 잡으러 가야 한다는 뜻인데, 비단 바둑을 떠나서도 자신이 생존한 다음에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대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표현과 크게 다르며, 어찌되었든지 살아남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지극히 실리적인 사고이다. 돌아보면 우리의 현대사는 이 표현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했고, 서로를 이겨야 하는 극한 경쟁을 통해 오늘날의 부를 축적하였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왔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국민들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우리사회에서는 “실패도 귀중한 자산이다”는 말보다는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잘 받아들여 진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살아남아야 인정받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영리조직이든 비영리조직이든, 혹은 규모가 크든 작든 수 많은 경영자들 역시 어떡해서든지 살아남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 물론 작고 힘 없는 개인도 이러한 사고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또 왜 이겨야 하는 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늘 부족했다. 이기는 것에, 살아남는 것에, 앞서가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둔 사회에서 우리는 위법과 꼼수를 대단한 능력으로 받들어 왔고, 수단이 목적을 앞서는 대단한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게 10위 권의 경제대국이라 하지만 중진국의 덫에 빠진 지 이미 오래이며, 앞으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생존전략의 극적인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전반의 정체현상은 정치의 후진성이나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근본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이루며 국가의 근간이 개개인의 사고가 지나치게 과거의 틀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는 시민의식을 넘어서지 못하며, 산업활동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묶고 있는 각종 규제 또한 시민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장 크게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시민의식의 미성숙, 신뢰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수단이 가장 중요했던 우리의 과거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를 보자면 생존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를 벗어난 지 오래이다. 생존과 앞서가는 것만이 최우선이 아닌 사회야말로 다음 차례의 도약이 가능해진다. 부디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공존의 삶을 살 수 있으며, 하루 하루가 조금은 더 평안한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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